1. 디지털유산 처리 문제의 부각
1969년 아르파넷(ARPANET)으로 시작된 인터넷은, 1990년대 이후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의 등장으로 폭발적 성장을 하였고,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현재는 전 세계 생활인의 필수적 네트워크가 되었으며, 나아가 정보생산의 핵심적 장(field)이자 창(window)으로서 기여하고 있다.
정보생산의 주체가 초기의 포털과 같은 서비스 기업이 아닌 이용자 중심으로 바뀌면서 인터넷 공간은 다양하고 개성넘치는 UGC(User Generated Contents)로 넘쳐났고, 정보의 형태도 단순한 글, 이메일이 아닌 사진, 동영상, 음원, 애니메이션 등으로 진화하면서 질적 가치로 보나 양적 수량으로 보나 급속한 성장을 하였다.
그 사이, 언젠가는 사후세계로 들어가야 하는 운명을 지닌 정보생산의 주체는 자신이 생산했던 불멸적인 정보의 운명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정보주체의 고민이 바로 디지털유산의 상속 문제인 것이다.
2. 디지털유산 처리의 역사
온라인 디지털정보는 정보주체가 생산하더라도, 그 대부분이 포털업체의 공간을 활용해서 저장ㆍ재생산되는 관계로, 정보생산의 주체이지만 포털의 이용자에 불과한 소비자로서는 자신이 포털 공간에 축적한 디지털 정보를 사망시 자신의 후손에게 상속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하여 그간 주도적인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포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는 미국의 이라크 참전 해병인 저스틴 마크 엘스워스 병장의 사망과 관련하여 2004년 11월경 그의 부모가 이메일 계정 접근을 거절한 야후(yahoo)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후의 미국 판례 추세와는 달리 이 소송에서 유족은 승소하였지만, 이 판결은 디지털유산의 상속을 획기적으로 해결하는 역할까지는 하지 못하였다. 이는 포털의 적극적인 협조가 이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책이라는 점을 시사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2013년 4월 11일, 세계 최대 포털인 구글(Google)이 자발적으로 디지털유산 상속과 관련하여 디지털 세계의 질서를 재편할 역사적인 서비스를 개시했다1). 서비스의 명칭은 ‘휴면 계정 관리자(Inactive Account Manager)’. 이 서비스 안에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디지털유산 상속을 포괄하는 내용이 들어 있기에, 포털 전체에 흩어져있는 사망자의 디지털 재산을 별도로 보존하고 전달하여 주는 것이 기술적ㆍ경제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최초로 확인시켜 주었다.
3. 디지털유산 상속에 대한 각국의 입법태도
게시글, 음원, 사진, 동영상, 이메일, 아이템 등의 디지털유산은 정보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고 재산으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어, 디지털유산의 상속 문제는 정보법의 영역으로 다루어질 수도 있고 재산법의 영역으로 다루어질 수도 있다. 이 문제가 정보법으로 다루어지는 경우에는 프라이버시 또는 개인정보의 성격이 강한 디지털유산의 상속에 소극적으로 될 수밖에 없고, 재산법으로 다루어지는 경우에는 디지털유산의 상속이 당연한 것이 된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 문제를 정보법으로 접근하여 디지털유산의 상속에 부정적이며,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의 우리나라 포털은 사망자 계정을 폐쇄하거나 기록을 삭제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이나 미국의 일부 주는 재산법적으로 접근하여 또는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에 디지털유산의 상속에 대하여 긍정적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6개주(2005년 코네티컷주, 2007년 로드아일랜드주ㆍ인디애나주, 2010년 오클라호마주, 2011년 아이다호주, 2013년 버지니아주)는 이미 디지털 유산의 상속에 대하여 법으로 보장하고 있고, 미국의 19개 이상의 주는 현재 입법화 과정에 있다. 나아가 2011년부터는 통일법위원회(Uniform Law Commission)가 각 주의 법률을 통일할 수 있는 디지털재산 통일법 제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4. 미국의 디지털재산 통일법 초안
디지털재산 통일법(Fiduciary Access to Digital Assets Act, 이하 ‘통일법’)의 초안은 회의 및 검토 목적으로 여러 차례 통일법위원회에 의하여 발표되었다. 통일법위원회는 법조인 자격을 가진 미국 각 주 파견대표로 구성된 위원회로서, 1982년부터 통일적인 법체계 구축에 주력하고 있는 비영리단체이다.
디지털재산 통일법 초안은 디지털유산 상속에 관한 기존의 주법들을 수용ㆍ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원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디지털유산 상속에 대하여만 다루고 있지 않다. 디지털재산 통일법은 크게 사망자 디지털재산의 상속 및 관리, 법정대리인에 의한 무능력자 디지털재산의 관리, 임의대리인에 의한 디지털재산의 관리, 신탁에 의한 디지털재산의 관리의 4가지 부분을 모두 다루고 있다. 금년 초에 발표된 두 번째의 초안(2013년 1월 18일) 중 디지털유산 상속을 중심으로 이 법의 특징과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통일법은 한마디로 디지털재산 관리에 대한 일반법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재산의 상속에 한하여 다루지 않고, 한 개인의 디지털재산을 그 자신이 아닌 대리인ㆍ수탁자 등이 관리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다루고 있으며, 사망자의 디지털재산의 사후 관리를 위와 같은 여러가지 경우의 하나로서 규정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2011년 9월경, 맥아피(McAfee)사는 전 세계적으로 한 사람당 2,777개의 디지털 파일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디지털 자산에 대하여 37,438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특히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디지털 자산이 55,000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2). 통일법은 이러한 정보자산에 대한 미국인들의 시각을 잘 반영한 것이며,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서 선구적으로 정보자산의 대행적 관리가 필요한 여러 경우를 모아 통일적으로 규율하고 있다.
둘째, 디지털재산에 관한 명확한 정의규정이 존재한다(제2조). 즉 디지털재산(Digital Property)을 디지털계정(Digital Account)과 디지털자산(Digital Asset)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의하고, 디지털계정은 디지털자산 및 디지털기기에 접근할 수 있는 정보를 처리하는 전자시스템으로 정의하며, 디지털자산은 디지털기기 또는 디지털기기상의 전자수단에 의하여 처리되는 정보와 디지털계정의 접근을 제어하는 수단으로 정의하였다.
버지니아 주법이 디지털계정에 대하여 정의하고 있지만, 디지털계정과 디지털자산의 모두에 대하여 명확하게 정의한 입법은 미국 내에서는 최초이다. 다만 통일법 내에서 디지털계정과 디지털자산의 법적 취급이 다르지 않아서 구별의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하여 의문이 있다.
셋째, 디지털유산(=디지털재산) 상속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는 제4조(“유언장 또는 공식절차에 의한 명령에 달리 정함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위하여 합리적으로 행위하는 인격대표자는 사망자의 디지털 재산을 적용법령 및 유효하게 적용되는 서비스계약약관 하에서 가능한 최대범위까지 정당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디지털유산 상속에 있어 상속인을 이해관계인 중의 하나로 다루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상속인이 디지털유산 상속에서 중심적인 지위로 다루어지지만, 기존의 여러 주법과 달리 통일법 초안은 상속인을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지 않다. 통일법 초안이 이런 태도를 취한 이유는, 이 법이 상속과정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상속인의 인격대표자(우리법의 유언집행자, 상속재산관리인에 해당)의 권한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넷째, 디지털유산 상속의 제한요소에 대하여 충분히 배려하고 있다(제4조). 디지털유산 상속에 있어 고려하여야 할 제한요소로는, 피상속인의 의사, 법원의 명령, 법령상의 제한, 디지털재산에 얽힌 계약관계 등이라 할 것인데, 통일법 제4조는 이에 대하여 압축적으로 잘 기술되어 있다.
통일법이 상속의 제한요소를 이처럼 배려할 수 있었던 것은, 통일법위원회가 디지털유산 상속 여부에 대하여 고민하기보다는 상속 자체는 당연히 인정된다는 전제하에, 어떻게 상속 과정상의 이해관계를 조절하고 인격대표자의 권한을 조절할 것인가에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다.
다섯째, 구체적인 상속절차(제8조)와 이해관계인의 이의절차(제9조)가 마련되어 있다. 통일법 제8조는 상속에 필요한 서류 또는 인격대표자의 권한행사에 필요한 서류를 열거하고 있으며, 제9조는 상속과정에 이의가 있는 이해관계인은 법원에 서면으로써 이의를 신청할 수 있고, 법원은 15일 이후 60일 이내에 심문절차를 거친 다음 인격대표자의 권한을 제한할 수 있게끔 했다.
구체적인 상속절차는 코네티컷 주법, 로드아일랜드 주법, 인디애나 주법, 버지니아 주법에도 기술되어 있던 것을 반복한 것으로 보이며, 이해관계인의 이해절차는 버지니아 주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버지니아 주법은 미성년 사망자의 디지털기록의 공개에 초점을 맞춘 법이기 때문에, 이의절차의 목적이나 내용이 버지니아 주법과는 상이하다.
통일법은 아직 초안에 불과하고, 이 초안을 토대로 많은 논의와 회의검토 절차가 예정되어 있으며, 특히 기존법 체계에 맞추어야 하므로, 최종안은 초안과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례로 6월 정기회의에서 논의될 세 번째 초안(2013년 5월 31일)은, 디지털계정을 계정보유자가 접근할 수 있는 정보를 처리하는 전자시스템으로 정의하고, 디지털자산을 디지털기기 또는 디지털정보전송시스템의 전자적 수단에 의하여 처리되는 정보 등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정보상속에 관한 포털의 면책에 대한 사항도 새롭게 기술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몇 가지 수정된 조항들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유산 상속에 대한 기본적인 틀은 변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5. 디지털유산 상속에 관한 우리나라 법률안
세계 각국의 추세에 발맞추어 2013년 5월 22일, 우리나라 제19대 국회에서도 지난 18대의 3차례 입법안에 이어, ‘디지털유산에 관한 상속’을 포함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김장실 의원 등에 의하여 발의되었다. 이 법안은 디지털유산 상속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준용법을 민법상속편으로 채택하고 있고, 이해관계인의 이익을 고려하고 있으며, 특히 사망자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인 절차는 대통령령으로 위임하고 있다.
이 법안은 디지털유산 상속 문제를 정보법의 시각에서 벗어나 재산법의 시각으로 보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고, 사망자의 의사를 우선적으로 반영하면서도 상속 과정에서의 이해관계인의 이익을 고려하였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트렌드 특히 미국의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 Cnet(2013. 4. 11.). Prepare a digital will for your Google accounts.
2) The Wall Street Journal(2012. 8. 31.). Passing Down Digital Assets.
*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대표변호사 작성, KISO저널(2013. 6. 28.)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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