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 권리 : 전 세계는 소송 중

2020년 12월 22일 업데이트됨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잊혀질 권리에 대한 오해가 있다면, 갑자기 생긴 개념이며,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잊혀질 권리의 역사는 인터넷의 역사에 비하면 비교적 오랜 기간에 문제되었다.

이번 기고에서는 잊혀질 권리가 비교적 오랜 사법투쟁 역사의 산물이라고 점을 밝히기 위하여 실증적으로, 잊혀질 권리를 근거로 한 사법투쟁의 역사상 주요 사건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 사법투쟁의 정리는 앞으로 언젠가 우리나라에도 도입되어야 하는 잊혀질 권리의 범위, 한계나 행사방법에 대한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1. Max Mosley 사건 (독일, 2012년)

최근 잊혀질 권리에 관한 소송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2012년 9월경의 ‘Max Mosley v. Google’ 소송이다. Max Mosley라는 사람은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Formula 1(F1)의 수장이었던 사람으로서 해외에서는 저명인사에 속한다.

하지만 2008년 5월경, Max Mosley가 다섯 명의 창녀와 함께 나치 복장으로 가학성 음란 파티를 하는 장면을 찍은 몰카 동영상과 사진들이 영국 타블로이드 잡지 ‘News of the World’에 실리면서 그의 운명이 바뀌게 되었다. ‘News of the World’는 ‘F1 BOSS HAS SICK NAZI ORGY WITH 5 HOOKERS’라는 제목과 함께 Max Mosley에 대하여 히틀러를 동경하는 파시스트의 자손이라고 표현하였다.

이 몰카 동영상과 사진들은 순식간에 인터넷을 점령하게 되었고, 수억개의 클릭이 몰카 동영상과 사진들 위에 찍혔다. 당황하고 화가 난 Max Mosley는 ‘News of the World’ 잡지를 상대로 프라이버시 침해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다. Max Mosley는 공인이고 ‘News of the World’는 언론매체였기에, Max Mosley에게 불리한 법정 공방으로 보였으나 결과는 반대로 나왔다.

영국의 High Court는 Max Mosley의 손을 들어주면서, Max Mosley가 나치 숭배를 한 것은 아니며, Max Mosley에 대한 몰카 동영상과 사진들이 일반인의 공적 관심사도 아니라는 이유로, ‘News of the World’에게 60,000파운드의 배상을 명하였다. 하지만 인터넷에 가학성 동영상과 사진들이 광범위하게 깔려 있는 한, 이 승소는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에 불과하였다.

Max Mosley는 손해배상 승소에 만족하지 않고, 가학성 동영상과 사진들이 실려 있는 모든 인터넷 사이트를 상대로 그 삭제를 요청하는 또 다른 소송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Google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시도는 번번이 좌절되었다. 누군가 Google 검색이나 Youtube 검색을 통하여 한 장이라도 Max Mosley에 대한 동영상 또는 사진를 찾는 순간, 그 동영상과 사진은 전세계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Max Mosley는 최종적으로 ‘Google 검색을 막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결론 내렸고, Google에게 자신에 관한 동영상과 사진이 불법적인 것이므로 검색 필터링을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Max Mosley에 관한 동영상과 사진을 기꺼히 삭제해 주던 Google은, 그러나 검색 필터링 요구에 대하여는 단호하게 거절의사를 밝혔다.

Google의 반박을 살펴보면, Max Mosley의 요구는 일종의 인터넷에 대한 모니터링 즉 검열이고, 검색되어야 할 다른 정보가 검색 필터링으로 인하여 검색되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Max Mosley에 관한 동영상과 사진은 불법적인 것이지만, Max Mosley에 관한 검색 자체가 불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아가 문제가 된 동영상과 사진의 복사본이나 유사본을 자동으로 검색하여 지우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Max Mosley는 불가피하게 Google을 상대로 다시 소송을 시작하게 되고, 독일 함부르크 법원 등 현재 유럽의 각 국가에서는 Max Mosley와 Google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망각이 없는 기계에 대한 한 남자의 또 다른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법적 당위성이나 기술적 가능성에 대하여 확신을 하고 있는 Max Mosley는 끝까지 가 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고, 유럽 언론은 Max Mosley와 Google의 소송이 잊혀질 권리에 관한 ‘landmark case’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과거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F1 자동차를 타고 트랙 위에서 남들을 따돌리며 질주하던 Max Mosley가, 이제 지구상에서 더 빠른 인터넷을 타고 정보 위에서 기계 문명을 극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2. Walter Sedlmayr 사건 (독일, 2007년)

1990년 독일의 유명한 배우인 Walter Sedlmayr(발터 제들마이어)는 볼프강 베를레(Wolfgang Werlé)와 만프레트 라우버(Manfred Lauber)에 의하여 살해되었고, 이후 두 명의 범인은 15년 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2007년 여름에 출소한 이후 ‘위키피디아’의 Walter Sedlmayr에 관한 항목 중에서 자신들의 이름이 Walter Sedlmayr의 살인자로 명기되어 있음을 알고, ‘위키피디아’에 경고장을 보내 자신들의 이름을 지워 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위키피디아’는 이를 거부하였다.

결국 두 명의 범인은 소송을 제기하기로 이르렀고, 함부르크 법원의 법정에서 “위키피디아로 인하여 출소 이후의 갱생의 권리가 침해되고, 새로운 삶이 방해되고 있으며, 정신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유죄 판결이 확정된 사람으로서 이미 공인이므로 위키피디아에서의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어쨌든 독일 법원은 2008년 1월경, 이들의 손을 들어 주어 위키피디아 독일어판에서 이들의 이름을 삭제하여 주었다. 하지만 같은 사건에서 미국에서는 이들의 요구가 거절되었으며, 현재까지 위키피디아 영어판은 Walter Sedlmayr에 관한 항목에서 이들을 살인자로 명기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1973년의 ‘형기를 마친 범죄자의 신상은 삭제해 주어야 한다’는 연방헌법재판소의 판례와 관련 성문법이 존재하였기에 이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이지 이것이 결코 잊혀질 권리의 인정은 아니었음을 주의해야 한다. 반면 미국의 경우에는 연방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 조항 때문에 이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3. Chris Purtz 사건 (미국, 2011년)

2006년 10월경, 언론기관인 Daily Californian은 UC Berkeley 출신의 미식축구 선수인 Chris Purtz의 스트립클럽에서의 악행과 이를 이유로 한 풋볼팀에서의 방출 등에 대하여 기사를 작성하여 웹페이지에 올렸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11년 1월경, Chris Purtz의 아버지인 Harvey Purtz는 Daily Californian의 수석 편집장 Srinivasan에게, Chris Purtz에 관한 Daily Californian의 기사로 인하여 자신의 아들이 심리적 고통을 받았으며, 그로 인하여 2010년 1월에 자살했고, 자신은 더 이상 Daily Californian의 기사를 참을 수 없는바, 자신의 아들의 관한 기사를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Srinivasan은 회사의 방침에 따라 삭제를 할 수 없다고 거부했고, 결국 이 사건은 Harvey Purtz의 손해배상청구의 형식으로 법정에까지 갔다. 하지만 법원은 Srinivasan의 손을 들어 Harvey Purtz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렇게 법원이 Harvey Purtz의 청구를 기각한 것은, Harvey Purtz의 상대가 언론기관이라는 점이 매우 크게 작용하였다.

4. Alfacs Vacances 사건 (스페인, 2012년)

1978년, Mario Gianni가 운영하는 Alfacs Vacances 캠핑장은 주변 도로를 지나던 유조차의 교통사고로 말미암아 화재가 발생하였고, 그 결과 캠핑장에 있던 200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이 사건이 발생한지 30년이 지났건만, 지금도 Alfacs 캠핑장에 대한 Google 검색을 하면 화재 뉴스와 함께 불에 타는 캠핑장 사진과 죽은 시체의 사진이 검색되고 있다.

이에 Mario Gianni는 Google Spain을 상대로 이러한 검색 결과로 인해 자신의 권리에 대한 침해가 발생한다고 주장하면서 스페인 민사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은 Google 본사에 대한 소송이 아니라는 이유로 당사자적격이 없다고 하여 각하되었다.

이 소송은 기존의 소송과는 달리, 사람 자체의 행적에 관한 기록 삭제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사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물건에 관한 기록 삭제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인격만큼이나 재산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한 현대인이, 잊혀질 권리는 그들의 소유물에도 미쳐야 한다고 주장한 사례이다.

5. 90 individuals 사건 (스페인, 2010년)

2010년경, 스페인 개인정보보호원(Data Protection Agency)은 자국민 90명(90 individuals)에 대한 구글 검색 정보에 대하여 행정조치를 취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90명이 스페인 개인정보호호원에 자신들에 대한 정보가 구글에서 더 이상 검색되지 않게 해 달라는 공식적인 신청을 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신청인 중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정 폭력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소가 구글 검색 결과에 나와 있다고 주장했고, 다른 사람은 학생 시절 체포되었던 것이 중년이 된 지금에도 검색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검색 결과는 스페인 정부의 공적 간행물의 내용이 전자기록으로 전환되면서 발생한 탓도 있었다.

이에 대하여 구글은 특정인에 대한 검색 결과를 차단하는 것은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표현의 자유에 부정적 영향(chilling effect)을 미칠 것이라며 반대하였다. 하지만 스페인 개인정보보호원은 “공적 간행물의 발행을 멈출 수는 없지만, 그래도 검색되지 않게 할 조치는 취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피력하면서, 구글이 유효기간이 지난 정보나 부정확한 정보에 대한 검색 링크를 계속 제공하는 것은 개인들에 대한 프라이버시와 잊혀질 권리의 침해이며, 따라서 Google Spain에게 신청인들에 대한 정보 검색 결과로 링크되지 않도록 80여개의 뉴스링크 기사를 삭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6. Italian politician 사건 (이태리, 2012년)

1993년경,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 지방 출신의 한 정치인(이하 ‘남자’)이 부패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곧 무죄 방면되었다. 하지만 그의 체포 뉴스는 이탈리아 언론인 ‘Corriere della Sera’의 뉴스 아카이브(news archive) 때문에 검색 결과에 여전히 나타나고 있었다. 이에 위 남자는 이탈리아 데이터보호위원회(Data Protection Commissioner)에 위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에 밀라노 법원에 ‘Corriere della Sera’는 자신에 관한 기록을 제거하여야 하고, 무죄방면이 되었으나 ‘Corriere della Sera’가 아직 업데이트 하지 않은 자신에 관한 뉴스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면서, 만일 위 조치가 어려우면 대체적으로 위 체포 뉴스에 자신의 무죄 방면 뉴스를 링크해 주거나 검색 결과로 나타나지 않도록 요청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청구도 기각되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른 태도를 취하였는바, ‘Corriere della Sera’는 아카이브 되어 있는 예전의 체포 뉴스에 업데이트된 뉴스가 같이 링크되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판시하였고, 이렇게 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라는 공익과 프라이버시ㆍ잊혀질 권리라는 사익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며, 한 개인의 identity에 관한 권리를 보호함과 동시에 국민이 정확하고 무결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다만 검색엔진은 단순한 매개자일 뿐이므로 위 남자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지금까지 ‘잊혀질 권리’에 관한 주요 사건을 살펴보았다. 잊혀질 권리는 도입이 필요하고 인류에게 긍정적인 기여도 매우 많이 할 것이지만, 반대로 잊혀질 권리가 만능이 아니라는 것과 잊혀질 권리의 과잉으로 인하여 자칫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기에 다른 미덕과의 균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우리가 적절한 균형점을 찾게 되면, 잊혀질 권리는 망각이 없는 디지털 문명시대에서 불편을 참으면서 사는 우리들에게 큰 축복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대표변호사 작성, 보안뉴스(2013. 2. 19.), 로앤비(2013. 3. 5.), 리걸인사이트(2016. 2. 17.)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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