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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스파이 사건의 랜드마크 케이스 되짚어보기


美 연방수사국(FBI)이 랜드마크적 케이스라 지칭했던 산업스파이 사건(United States vs. Chung)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사건에 나오는 동판 청(Dongfan Chung)은 락웰 또는 보잉사의 연구원이었으며 산업스파이 혐의로 15년 이상의 형을 받았다.

현업을 마치고 은퇴한 동판 청이 어떻게 기소가 됐고, 법원은 검사의 기소 내용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특히 비밀성 유지로 인한 독립적인 경제적 가치의 존재 여부에 관해 어떻게 판단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동판 청은 1936년 중국에서 태어나 1972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다. 동판 청은 2002년 은퇴할 때까지 락웰(Rockwell, 나중에 보잉사에 흡수됨) 또는 보잉사(Boeing)에서 스페이스 셔틀에 관한 업무를 했으며 은퇴한 이후 2006년까지 계약자(contractor)로서 보잉사와 계속 일을 했다.

사건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美 수사당국이 처음부터 동판 청을 수사하지는 않았다. 다만 전직 엔지니어였던 치 막(Chi Mak)을 수사하던 중에 2005년경 치 막의 집에서 압수한 주소록에서 동판 청을 알게 됐으며 동판 청과 중국국제항공기술수출입회사의 프로젝트 매니저인 첸 퀴난 사이에 오간 일련의 편지들, 중국의 항공사가 동판 청에게 준 업무 리스트도 같이 발견됐다. 이후 FBI는 동판 청을 용의선상으로 올리고 동판 청의 집에 대한 감시를 시작, 쓰레기통 수색을 통해 중국어 신문 사이에 숨겨진 보잉사의 기술문서를 발견하게 된다.

2006년 11월, FBI는 동판 청을 인터뷰하고 동의 하에 그의 집을 수색하게 된다. 수색 결과 FBI는 30만 페이지에 달하는 보잉사의 우주항공선(X-37), 치눅(Chinook) 헬리콥터, 제트전투기(F-15), 로켓(Delta IV Rocket) 등에 관한 보잉사의 문서뿐만 아니라 중국에서의 스파이 활동을 입증할 수 있는 2003년의 중국 여행 기록 등을 확보하게 된다. 이러한 자료에 대해 동판 청은 보잉사의 허락 하에 획득한 자료이며, 책을 쓰기 위해서 확보한 자료라고 변명했지만, 이러한 변명은 허위로 판명이 났다.

FBI는 배심원 결정을 얻어 2008년 2월 경제스파이법(Economic Espionage Act of 1996) 위반죄 등으로 기소하면서 6개의 서류를 영업비밀로 특정했는데, 그 중 4개는 보잉사의 ‘위상배열안테나(Phased Array Antenna)’에 관한 것이고, 2개는 ‘델타 IV 로켓(Delta IV Rocket)’ 기술에 관한 것이었다. 이 사건에서 동판 청은 3가지 혐의에 대해 기소됐는데, 여기서는 경제스파이 혐의만 설명한다.

법원의 판단

제1심은 캘리포니아 중앙법원(California Central District Court)에서 진행됐고, 법원은 심리 결과 동판 청의 유죄를 인정하면서 15년 8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러한 형은 한국에 비하면 10배에서 20배 정도의 중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동판 청은 결과에 대해 항소했고 소송은 제9항소법원(Ninth Circuit Appellate Court)으로 이관됐으며 항소법원은 6개의 문서가 영업비밀(Trade Secret)에 해당하는지 검토했다.

동판 청은 1)공개되거나 일반적으로 구할 수 없는 비밀성이 있어야 하고, 2)그 정보에 대해 합리적인 보호조치가 취해져야 하며, 3)비밀성으로부터 파생된 독립적인 경제적 가치가 있어야 하는 바, 자신이 갖고 있는 자료에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며, 항소법원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첫째, 동판 청이 ‘위상배열안테나(Phased Array Antenna)’ 기술이 나사(NASA) 컨퍼런스 등에서 이미 공개됐기 때문에 영업비밀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항소법원은 일부가 공개되긴 했지만 상당 부분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업비밀 인정에 문제될 것은 없다고 판단했다.

둘째, 동판 청이 보잉사가 ‘위상배열안테나(Phased Array Antenna)’ 기술을 영업비밀로서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항소법원은 문서에 시정장치가 있었던 것은 아니나 보잉사는 직원들로부터 보안서약서를 받았으며, 문서를 외부인과 공유하지 말도록 교육을 했고, 전체 공장에 대해 물리적 보안조치를 취하면서 출입통제 조치를 취한 점과 전 직원의 소지품과 차량을 수색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바 영업비밀로서 적정한 보호조치를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셋째, 동판 청이 보잉사는 독점계약자 상태이므로 NASA 계약체결 과정에서 경쟁자가 없으며, ‘위상배열안테나(Phased Array Antenna)’ 기술 문서는 실제로 사용된 적이 없기 때문에 독립적인 경제적 가치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 대해, 항소법원은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경쟁자들이 이 자료들을 확보하게 되면 보잉사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 알 수 있으며, 프로젝트에 어떻게 응하는지에 대해도 알 수 있다는 점으로 비밀성에 대한 독립적인 경제적 가치는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넷째, 동판 청은 중국 정부를 위한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항소법원은 동판 청은 중국 정부 관리들에게 기술을 제공하거나 중국인 엔지니어에게 발표 자료를 전달해 온 것으로 미루어 중국 정부를 위한 의도는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결국 항소법원은 동판 청의 항소를 기각하고, 동판 청에게 원심과 같은 형을 인정했다.

국내 법 역시 미래가치 인정할 수 있다

이 판결은 ‘비밀성 유지로 인한 독립적인 경제적 가치’에 대해 많은 논점을 담고 있다. 항소법원은 ‘비밀성 유지로 인한 독립적인 경제적 가치’를 판단함에 있어 현실적인 가치 측면에서만 판단한 것이 아니라 잠재적인 가치가 있는 경우에도 그 경제적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즉 첫째, 영업비밀로 특정된 기술이 직접적으로 사용되지 않아 경쟁자에게 현실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영업비밀을 취득함으로써 경쟁회사는 보잉사가 어떻게 과업을 추진하는지, 어떤 프로세스를 취하는지 등을 알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 도입이 가능할 것이고, 보잉사가 입찰에 참여하는 방법 등을 파악함으로써 장차 보잉사의 독점계약상태가 종료했을 때 보잉사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바, 그렇다면 잠재적 가치를 인정할 수 있기에 영업비밀로 인정할 수 있다.

둘째, 영업비밀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할 때 현실적인 경쟁자의 존재 여부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에 경제적 가치를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하는 것은 영업비밀 유출로 인해 장차 당해 시장에서 경쟁자가 출현할 수 있는지 여부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법원이 이렇게 영업비밀의 경제적 가치를 현실적 가치뿐만 아니라 잠재적 가치까지 확대한 이유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 사안에서 비록 중국 항공회사가 보잉사의 위상배열안테나나 델타 IV 로켓 기술에 대한 경쟁자가 아니더라도 보잉사의 영업비밀 유출로 인해 언제든지 현실적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한 것이고, 현재 중국 항공회사가 이러한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보잉사만이 이러한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장래적으로는 보잉사의 기술을 수호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인 것이다.

이러한 미국법원의 법해석이 우리나라에 적용될 수 있을까? 우리 법의 영업비밀 정의 규정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다. 이를 살펴보면 특별하게 현실적인 경제적 가치로 제한하고 있지 않는 바, 미국법원의 법해석은 우리나라 법정에서도 그대로 통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

*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대표변호사 작성, 보안뉴스(2014. 10. 10.)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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