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와 정보, 그리고 개인정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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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와 정보, 그리고 개인정보 (1)


필자의 이번 글은 서울대 한국행정연구소가 주최한 ‘창조경제를 위한 스마트 거버넌스 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빅데이터 산업 발전을 위한 법제도적·정책적 제언이라 할 수 있다.

정보기본법의 제정

세상은 복잡다기하고 수많은 것을 담고 있지만 극히 단순화시키면 그 구성요소는 사람과 물건으로 이루어졌다. 아파트 안에서 TV를 보는 사람, 회사 건물에서 컴퓨터를 보며 업무를 보는 사람, 자녀들과 함께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의 일상생활이 존재하지만, 결국 분석해 나누다 보면, 그 존재 형태는 물건과 사람으로 구분 지을 수 있다.

법도 이러한 기반 위에서 세워졌다. 고전적인 법은 모든 존재를 사람과 물건으로 단순화시켜서 그 사이의 법률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민법을 보면, 물권법과 채권법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물권법은 사람의 물건에 대한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법이고, 채권법은 사람의 사람에 대한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법이다. 이런 관점이 수천년을 이어온 법의 이론적 기초이자 철학적 배경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세상이 사람과 물건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관점의 부자연스러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물건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중요한 그 무엇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것을 간과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하게는 많은 법학자들이 그 무엇의 존재를 인식은 했지만 그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법학자들 입장에서는 일상생활에서 그 무엇은 사람과 물건보다 중요도나 재산적 가치가 크지 않아서 무시할 만했기 때문이다. 법은 통상 사회적 합의이니까 결국 그 무엇에 대한 독립적인 중요성이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하지 말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고도 할 수 있고, 적어도 그 무엇에 대한 독립적인 중요성이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사람과 물건 외에 무엇이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정보(Data)이다. 참고로 이 글에서는 ‘정보’와 ‘Data’라는 단어를 단순한 인식내용 내지 파편에서부터 고도로 가공된 인식내용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할 것이다. 그것이 빅데이터 시대의 빅데이터 개념에 가장 잘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보를 이러한 의미로 본다면, 철학적으로는 관념(Idea)이라고 표현되고 논의되어 온 것이 바로 이 정보의 고전적인 이름일 것이다.

우리가 물건을 자세히 관찰하고 물건에 대하여 깊이 고민해 보면, 단지 물건 그 자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물건과 그 물건에 대한 각종 정보가 결합되어 나에게 있어서 그 물건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사람 역시 사람 그 자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그 사람에 대한 각종 정보가 결합되어 나에게 있어서 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내 눈앞에 자동차가 놓여 있을 때, 그것이 자전거가 아니라 자동차라는 것도 정보이고, 빨강이라는 이름의 색깔 페인트로 도포되어있는 자동차라는 것도 정보이며, 시속 200km/h를 달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정보이다. 이러한 정보들은 그 물건 자체가 고유하게 함유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물건과 그 물건에 대한 정보는 분명히 별개의 것이고, 이렇게 자동차는 그 자동차에 결합된 정보와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 사람이 남자라는 성별로 구분될 수 있다는 것도 정보이며, 그 사람의 이름이 ‘김철수’라는 것도 정보이고, 그 사람의 취미가 영화감상이라는 것도 정보이며, 그 사람이 어제 ‘이영희’를 만났다는 것도 정보이다. 이렇듯 사람도 단지 생명력을 가진 유체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그 사람과 결합된 각종 정보와 함께 존재하고 있다.

대부분의 정보는 사람이나 물건과 결합된 것으로서, 위와 같이 우리는 사람과 물건을 인식할 때 실질적으로는 정보를 통해 인식하고 있고 인식능력을 가지고 있는 모든 생명체는 그렇게 해 왔다.

특히 인류는 그 정보를 사람이나 물건에서 떼어 내어 독립시키고 그렇게 독립된 정보를 서로 다른 시간에 놓인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능력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글자와 글자를 이용한 기록이다.

이 글자와 기록을 통해 인류는 인식능력을 집단적 능력으로 고도화시킬 수 있었고, 이것이 인류의 발전과 번영 때로는 파괴를 반복적으로 이루었다. 하지만 글자와 기록은 항상 눈에 가시적으로 보이는 물체, 예컨대 석판이나 종이, 책 등과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글자를 이용한 기록 또한 하나의 기록‘물’로만 취급되어 왔다.

그런데 불과 몇십년 전, 혁명이 일어났다. 이 기록이 즉 정보가 물체로부터 완전히는 아니지만 거의 완전히 독립해 버린 것이다. 컴퓨터의 발명에 이은 인터넷의 발명이 바로 그 혁명을 이끌었고, 이때부터 정보는 고대의 이름인 관념(idea)보다 현대에 더 어울리는 이름인 정보(data)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보는 유체물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유체물들 사이를 흘러다니는 하나의 흐름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단지 유체물 안에 들어있는 내용으로서 단지 부수적인 지위에 머물러 있던 것에서 벗어나, 정보가 유체물로부터 반(半) 독립한 흐름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되자 인류의 생활은 획기적으로 변화됐다.

공간과 시간의 제약, 유체물의 제약 없이 실시간으로 원하는 때에 정보를 불러들이고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보를 불러들이고 인식하는 경로에 완전히 새로운 것이 추가되고 그 새로운 경로가 각종 제약을 제거하니, 정보를 인식하고 분석하는 양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예컨대 미팅을 앞둔 사람은 페이스북 등의 SNS를 통해 미팅할 사람을 검색하는 등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고 이를 통해 자기에게 어울리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자가용을 구매하려는 사람은 인터넷을 통해 만난 사람들 내지 그 사람들이 올려놓은 글이나 사진으로부터 여러 자동차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다음 분석하고 이를 통해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된다.

나아가 우리는 오바마 대통령에 관한 ‘정보’를 취합해 분석하면서 실제 만나지도 못한 오바마 대통령을 평가하고 있다. 정보는 이렇듯 경험하지 않은 오바마 대통령을 인식하게 하고 평가하게 하는 소스가 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사람과 물건을 인식하고 평가하게 해 주는 것이 바로 흐름으로서 존재하는 현대의 정보이다.

그런데 법은 처음 만들어질 때에는 정보를 염두에 두지 않았고 이런 전통이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정보의 존재양상과 그 기능, 영향력이 현저히 달라진 지금 이 시대에 이러한 법의 관점이 타당한가? 일상생활에서의 정보의 중요성이나 재산적 가치를 가벼이 여기는 사회적 합의가 이 시대에 적절한 것인가?

흔히들 지금을 정보화 시대라고 한다. 정보화 시대란 정보로도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시대를 의미한다. 특히 대량의 다양하고 빠른 정보가 모인 빅데이터가 우리의 새로운 원유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당연스럽게 앞으로 정보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시대에 있어 정보가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정보의 쓸모가 예전보다 더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적은 정보였음에도 그 쓸모가 컸을 수 있지만, 지금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지만 단위 정보의 가치는 예전보다 못하다고도 볼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의 정보의 영향력은 위와 같이 정보의 형태가 디지털화되어 기계화된 정보 처리가 가능해지면서 비로소 극대화된 것이다. 디지털 정보에 대한 고속의 자동화된 정보 처리가 가능해지면서 현재의 사람과 물건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예측도 가능하게 되면서 정보를 통한 가치 창출이 용이하게 되었다. 특히 컴퓨터 기술의 대중화로 누구든지 이러한 접근과 결과 창출이 용이해지면서 정보의 가치가 대중화된 것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어쨌든 빅데이터 시대에 살면서 정보가 일상생활에서 중요하지 않고 독립적인 재산적 가치도 없다는 옛 시각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는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엄청난 대가를 치루면서도 정보의 재산적 가치를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모순이라 할 수 있다. 정보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궁극적으로 빅데이터로 인하여 양산되는 정보는 장래 예측의 정보인 바, 이 정보로 인하여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고, 범죄와 사고를 방지할 수 있으며, 국가의 위기를 미연에 막을 수도 있게 된다. 즉 앞으로는 빅데이터로 인하여 수천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정보도 손쉽게 창출해 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정보의 가치를 법적으로 보호하고 나아가 정보의 유통성을 보장하면서 정보의 생산에서부터 양도, 상속, 처분, 사용수익 등에 대해서도 물건과 같이 별도로 규율할 필요가 있다.

정보의 속성을 파악하면서 정보에 대하여 동산과 같은 지위를 인정해 간다면, 빅데이터 산업의 성장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직까지 정보에 대한 기본법이 없는 바, 정보의 일반법이라 할 수 있는 ‘정보기본법’을 제정하여 정보에 대한 법적 보호를 본격적으로 그리고 폭넓게 발동시킬 필요가 있다.

*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변호사 작성, 보안뉴스(2014. 10. 30.)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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