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 권리’에서 ‘정보갱신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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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질 권리’에서 ‘정보갱신권’으로


최근 유럽사법재판소(ECJ)의 마리오 곤잘레스 변호사 판결 이후 국내외적으로 잊혀질 권리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 보다 뜨겁다. 변화하는 IT 현상에서 개인의 자기정보에 대한 결정권을 강화했다는 차원에서 이 판결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권리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유럽사법재판소의 고민보다 더 많은 고민이 있어야 하겠고 더 많은 법적·기술적 검토와 여론 수렴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IT 환경은 유럽과 다르며, 우리나라의 개인정보 환경 역시 유럽과 상이하다. 마리오 곤잘레스 판결에서 볼 수 있는 유럽과 구글의 관계는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

예컨대 유럽의 개인정보 당국은 견제의 대상으로 구글을 대했지만, 우리나라의 개인정보 당국은 우리나라 포털인 네이버나 다음 등을 오직 견제의 관점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유럽 사법재판소나 GDPR의 잊혀질 권리를 우리나라에 도입함에 있어 그 이념과 아이디어는 반영하되 그대로 카피해서는 아니 되고 우리 실정에 맞추어 적응시켜 도입하여야 할 것이다. 이에 본 기고에서는 한국형 잊혀질 권리로서 ‘정보갱신권’에 대해 제안하고자 한다.

이탈리아 정치인 판결과 업데이트 의무

관련하여 2012년 이탈리아 대법원의 판결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탈리아의 정치인인 원고는 1993년 부패혐의로 체포되었다가 무혐의로 석방된 적이 있었는데 그의 체포뉴스는 언론매체인 ‘Corriere della Sera’에 실려 있어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정작 무혐의 석방 기사는 찾을 수 없어 정신적 고통을 당했다.

이에 원고는 체포기사의 업데이트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체포기사의 삭제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하급심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언론의 자유’의 공익과 ‘프라이버시’의 사익을 형량하여 체포기사의 삭제 대신에 체포기사에 대한 후속 업데이트 기사가 같이 열람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도 검색엔진에 대해서는 단순한 매개자에 불과하다고 하여 어떠한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 판결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대부분의 잊혀질 권리에 관한 판례는 단지 삭제 여부만을 판단하여 당부를 결정하였지만, 위 이탈리아 대법원 판결은 단순한 삭제가 아닌 업데이트 의무를 부과하면서 표현의 자유·언론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조화시키고 있다.

잊혀질 권리라고 하면 오직 정보를 삭제할 권리로 이해되고 있고 또 사실 그것이 정확한 이해이지만, 극단적인 정보의 삭제(erasure)가 아닌 완화된 형태의 정보 업데이트(update)를 기본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여 현 시점에서 정확한 정보의 제공을 하게 하는 권리로 보는 것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즉 잊혀질 권리는 과거에 정확했고 적법했던 정보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적절해졌을 때, 삭제의 방법으로 디지털 시대의 망각을 실현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현 시점에서의 정확성을 도모해 보자는 것인데, 단순한 삭제 대신 업데이트를 원칙으로 삼게 되면 망각의 지점은 거치지 못하더라도 그 궁극적 목적인 현 시점에서의 정확성 도모는 놓치지 않을 것이며, 특히 잊혀질 권리의 가장 큰 비판점인 표현의 자유 침해나 알권리 침해의 문제점이 완전히 해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삭제를 하지 않고 정확한 정보의 변천과정을 밝혀 이를 누구나 볼 수 있다면 표현의 자유나 알권리 침해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기록으로서 인터넷의 기능을 그대로 살릴 수 있을 것이고 인터넷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보장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잊혀질 권리’라는 용어 대신에 ‘정보갱신권’이란 용어로

나아가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의 용어는 그 자체로서 법적 권리 용어로 부적합해 보인다. 무엇이든지 다 삭제할 수 있다는 인식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극단성을 띠고 있으며, 그 본질이 이익형량이라는 객관적인 권리의 성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정보갱신권’이란 용어를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갱신’은 ‘업데이트(update)’의 의미이다. 잊혀질 권리를 단순 삭제가 아닌 업데이트가 원칙인 권리로 이해함으로써 잊혀질 권리의 가장 큰 비판을 극복할 수 있다면, 용어 자체도 잊혀질 권리 대신에 ‘정보갱신권’을 쓰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이 때 업데이트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링크 삽입이 있겠고, 내용 삽입 방법 등도 고려할 수 있다. 광의의 의미로는 삭제도 업데이트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명예훼손법·언론법 등과의 경계 명확해져

유럽의 잊혀질 권리를 그대로 받아들임에 있어 가장 큰 비판점은 표현의 자유나 알 권리 침해의 가능성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비판받는 점이 바로 기존의 명예훼손정보 삭제청구나 정정보도청구 등의 권리와의 관계 정립이다.

어떤 경우에 잊혀질 권리를 사용하고, 어떤 경우에 명예훼손 삭제청구를 사용하며, 어떤 경우에 정정보도청구를 해야 하는지 그 경계가 불명확하여 기존 법체계 안에 짜 맞추어 넣기가 쉽지 않은 것이 유럽의 잊혀질 권리이다.

하지만 잊혀질 권리를 정보갱신권으로 이해하면, 이러한 경계는 명확하게 정립된다. 사실과 다른 기사는 정정보도청구로서 해결하고, 사실에 부합하지만 상황이 바뀐 기사는 정보갱신권으로 해결하면 된다. 위법한 명예훼손이나 사생활침해 게시글은 명예훼손 삭제청구로서 해결하고, 적법한 게시글은 정보갱신권으로 해결하면 된다.

즉 잊혀질 권리를 유럽의 잊혀질 권리가 아닌 정보갱신권으로 이해하게 되면, 기존의 우리 법체계에 안착할 수 있게 된다. 기존의 법질서를 침범하지 않고 기본적인 법질서의 변형을 가져오지 않으면서도 순조롭게 우리 법질서에 포섭시킬 수 있다.

보충적으로는 삭제의 방법도 인정해야

한국형 잊혀질 권리인 ‘정보갱신권’은 오직 업데이트 의무만을 부과하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삭제함이 타당한 경우에는 정보주체가 삭제의 방법을 쓸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권리이다.

예컨대 청소년이 무심코 올린 글이나 청소년에 관한 글, 공익과는 전혀 무관하고 매우 사적인 내용의 글 등은 업데이트보다는 삭제의 방법이 더 적절할 수 있다. 즉 정보갱신권은 원칙적으로 업데이트 의무를 부과하되, 위와 같이 예외적인 경우에는 청소년 보호 차원이나 사적 영역 보호 등의 이유에서 삭제 의무를 인정하는 권리이다.

이처럼 잊혀질 권리의 도입은 필요하지만 여러 가지 폐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즉 도입의 당위성은 충분하지만 그 입법이나 권리범위, 실행방법 등은 신중해야 한다.

신중의 이유는 잊혀질 권리의 단점인 표현의 자유·알권리 침해 우려, 기록의 인터넷 기능 소멸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형 잊혀질 권리인 ‘정보갱신권’을 고려해 봄이 어떨까.

*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변호사 작성, 보안뉴스(2014. 9. 26.)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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