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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왕(歌王) 조용필과 음악저작권 (1)

최종 수정일: 6월 25일


올해는 67년도에 데뷔한 가수 조용필의 45주년이다. 1980년대 ‘오빠부대’를 형성하며 한국 대중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가수 조용필. 그 동안 수많은 히트곡을 내면서 동시에 다양한 음악실험을 했던 한국 대중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 그러기에 가수의 왕(歌王)이라고 불리는 가수.

최근 환갑이 넘은 가왕 조용필의 새로운 앨범 발매, 쇼케이스, 콘서트 개최와 더불어 25년 전의 저작권 사연이 시나위 리더 신대철이 올린 페이스북 글 때문에 널리 알려져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그 사연을 당시 신문기사 및 판결문을 토대로 재구성해 본다.

가왕 조용필은 1976년 호소력 있는 허스키 보이스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가사가 접목된 ‘돌아와요 부산항에’란 곡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때가 가왕은 26세의 나이였지만 이미 가수 경력은 10년이나 됐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미8군 무대에서 보컬그룹으로 활동하다 발표한 이 노래는 노래 제목 때문인지 부산에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가 서울로 상륙하게 됐다.

하지만 ‘돌아와요 부산항에’란 곡은 발표 때부터 저작권 분쟁을 일으키게 된다. 작곡가 황선우씨가 ‘지구레코드’, ‘킹프로덕션’, ‘오아시스레코드’, ‘힛트’라는 4개의 음반사에 저작권을 양도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자, 나훈아, 송대관, 조경수, 김연자 등 15명의 가수들이 이 노래를 다투어 부르고 음반을 내는 기이한 현상도 발생했다.

조용필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킹프로덕션’에서 출반했으나, 이듬해인 1977년 신대철의 아버지 신중현이 있는 ‘지구레코드’로 이적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지구레코드사 임모 사장와의 인연이 시작된다.

지구레코드사는 그 당시의 대표적인 레코드사로서, 조용필이 전속돼 있던 80년대 초에는 이미자가 전속돼 있던 태양음향과 함께 가장 많은 가수를 데리고 있었던 대형레코드사였다. 지금의 SM, YG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하지만 대중에게 알려지기 전인 72년도의 대마초 사건이 뒤늦게 문제가 돼 조용필의 활동은 오래가지 못하고 자숙의 시간을 가지게 됐다. 그러나 79년 말 대마초 연예인의 방송활동 규제 등이 풀리면서, 조용필은 80년 초 드라마 주제곡 ‘창밖의 여자’로 다시 화려한 재기를 하게 된다.

이후 조용필은 창밖의 여자가 수록된 1집을 포함해 2집 촛불(80년), 3집 고추잠자리(81년), 4집 못찾겠다 꾀꼬리(82년), 5집 친구여(83년), 6집 눈물의 파티(84년), 7집 여행을 떠나요(85년), 8집 허공(85년)까지의 앨범을 지구레코드에서 출반했다.

지구레코드에서 이렇게 많은 앨범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가왕 조용필이 1977년 10월 21일부터 1986년 11월 30일까지 9년간 지구레코드의 전속 계약 가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전속계약이란 그 당시의 주류적 계약 형태로서, 음반이나 테이프가 팔리는 수와 상관없이 일정 기간(통상 2~3년) 동안 전속계약금만 받는 계약의 형태이다. 이 계약형태는 전적으로 레코드사에 유리했지만, 당시 가수는 많고 레코드사가 과점형태로서 수도 적었기 때문에 음반을 내야 하는 가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1983년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당시 가수 1400여명중 100여명만 레코드사에 전속돼 있었다고 함).

1981년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디스크와 테이프가 100만장이나 팔렸어도 조용필이 받은 것은 돈으로 1000만 원과 승용차 한대라는 사실은 우리 가요계의 비리의 한 단면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표현돼 있으니, 전속계약의 폐해가 이만저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때문에 톱가수 조용필도 생계를 위해 밤무대를 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전속계약금(또는 전속금)은 85년경에는 1억 원을 넘어가고 그 즈음 이선희는 2억 원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87년경부터는 주류적 계약 형태가 ‘인세제’로 넘어가게 된다.

1988년도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전속계약제를 선택한 인기가수의 경우 2~3년 전속기간에 3000만 원에서 5000만 원 정도의 전속금을 받고, 반대로 인세제를 택하면 음반 1장당 650원의 인세를 받는다고 한다. 인세제를 택한 경우 10만장 판매에 5000만원 정도의 수익이 생기는 것이다.

작곡가ㆍ작사가의 사정은 가수보다 훨씬 더 열악했다. 1982년 매일경제 기사에 따르면, 한 곡당 1만5000원에서 2만원 정도를 받았다고 하니, 그 사정을 알만하다. 조용필의 히트곡인 ‘창밖의 여자’의 작사가 배명숙씨가 받은 돈은 20만원에 불과했다. 조용필이 1981년 받은 돈이 1000만원이었으니 1/50밖에 안 되는 수준이다.

한편 다른 가수들처럼 가왕 조용필측도 전속계약이 종료되는 1986년 11월 30일경, 지구레코드사의 임모 사장에게 인세제로의 전환을 제안했고, 1986년 12월 31일 인세제를 주내용으로 하는 계약이 체결되게 된다.

당시 상황에 대해 1987년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지구레코드와 전속계약을 했던 조용필은 3년 단위의 계약을 갱신해 오다가 얼마 전 인세제와 병행하는 조건으로 1억20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지구레코드사는 당시의 상황을 “가수 조용필씨와는 1977년 10월 21일부터 1986년 11월 30일까지 전속 가수제로 지속돼 오던 중 본 계약 기간 만료 전 인세제로 전환하기로 하면서 이에 덧붙여 저작권(상기 기간 중의 자작곡 : 31곡)만을 양도 받기로 하고 폐사는 이에 상응한 금액을 지불하는 것으로 합의했으나 이후, 가수 당사자가 자신의 저작권 일체를 넘겨줘 버리고 나면 장래의 수입이 적을 것 같으니 저작권의 일부만 양수해 달라고 간청하기에 공연권과 방송권은 가수에게 주고 제작회사로서의 특성상 복제권과 배포권만 폐사가 양수하기로 양보한 것입니다(1986. 12. 31. 법률사무소에서 공증)”라고 말하고 있다(출처 : http://nbbs2.sbs.co.kr/).

정리하면, 조용필이 작곡한 31곡에 대해 복제ㆍ배포권은 지구레코드사가 가져가고, 공연ㆍ방송권은 조용필이 가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용필이 자신의 노래를 복제해 발매하거나 배포할 수 있는 권리가 없고, 방송이나 공연에서 노래를 부를 수는 있지만 그 노래로 음반이나 DVD를 발매하면 지구레코드사로 수익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대표변호사 작성, 블로그(2013. 4. 28.), 디지털데일리(2013. 4. 28.)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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