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사의 기록을 새로이 쓴 '관객 1700만명의 영화' 명량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하지만 특히 초반에 이순신 장군의 의지와 갈등하는 인물로서 배설 장군이 나온다. 이순신 장군은 비록 전세에서 열위라도 마땅히 싸워야 한다는 입장이고 배설 장군은 현실론적 입장을 보였다.
그러다가 배설 장군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암살 시도를 하며 거북선(구선)을 불태운 후 배를 타고 도주하다가 안위가 쏜 화살을 맞고 쓰러지게 된다. 이 부분은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허구이지만 이 부분에 대하여 배설 장군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는 경주 배씨 후손들이 급기야 영화 명량측을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하였다.
이렇게 역사적 요소와 허구적 요소가 혼합된 사극에서 실존 인물을 다룰 때, 유족과 창작자 사이에 분쟁은 이번만은 아니다. 이미 영화 '실미도',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드라마 '김구' 등에서 유족들은 창작자의 기술 내용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 적이 있다.
이 사건들에서 판례는 사자의 명예와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를 비교형량하면서,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설정하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기존 사건들은 모두 현대사의 실존 인물에 관한 것이고 유족들이 명확하게 특정되지만, 이번 배설 장군의 경우는 400여년전 조선시대의 실존 인물이고 고소인은 유족이 아니라 14대 후손이며, 현재 경주 배씨 후손의 숫자는 10여만명 정도라는 점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첫째,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죄를 적용할 때 '사자'를 사료가 부정확하거나 존재하지 않은 조선·고려·삼국시대·고조선의 실존 인물까지 모두 포함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둘째, 형사소송법상 정해진 고소권자인 '친족과 자손'의 범위는 어디까지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도 역시 의문이 든다.
예컨대 어느 사극에서 가야국 김수로왕에 대한 명예훼손이 있었다면, 김해김씨 전체가 고소권자가 되는 것인가. 이 정도이면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여 위헌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대표변호사 작성, 법률신문(2014. 9. 29.)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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