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는 횡령죄의 재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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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는 횡령죄의 재물일까?


아직까지 국내에 비트코인 등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혹은 암호화폐)에 대한 법령이나 규제정책이 도입되지 않았다. 그러나 기업 중에는 가상화폐를 보유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관련된 법적 분쟁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오늘은 이와 관련하여 가상화폐도 횡령죄의 객체가 될 수 있을지 여부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형법상 재산죄 중 하나인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객체(범죄의 대상)가 재물이어야 한다. 형법상 재산죄는 그 객체(범죄행위의 대상)를 기준으로 ‘재물’에 대한 죄와 ‘재산상의 이익’에 대한 죄로 구분되는데, ‘횡령죄(형법 355조 2항 1호 등)’를 비롯한 ‘절도죄(형법 329조 등)’, ‘장물죄(형법 362조 등)’, ‘손괴죄(형법 제366조 등)’의 경우 그 객체로서 ’재물‘만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가상화폐가 횡령죄의 객체가 될 수 있는 지 여부는, 가상화폐를 형법상 재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문제로 직결된다.

형법상 ’재물‘이란 동산, 부동산과 같은 유체물 및 전기, 기타 물리적·물질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동력을 의미한다. 반면 재산상의 이익이란 재물 이외의 재산적 가치가 있는 이익을 뜻하는바, 재산상의 이익은 재물이 될 수 없다(민법 98, 99조, 형법 346조, 대법원 1994. 3. 8. 선고 93도2272 판결 등 참조) 예를 들어, 광업권은 재물인 광물을 취득할 수 있는 권리에 불과하지 재물 그 자체는 아니므로 횡령죄의 객체가 될 수 없고(대법원 1994. 3. 8. 선고 93도2272 판결),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 그 자체는 유체물이라고 볼 수 없고, 물질성을 가진 동력도 아니므로 재물이 될 수 없다(대법원 2002. 7. 12. 선고 2002도745 판결).

가상화폐의 재물성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국내 판결로는, 비트코인을 무형의 재산으로 인정한 사안이다. 대법원은 음란물유포 인터넷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유포)죄와 도박개장방조죄에 의하여 비트코인(Bitcoin)을 취득한 사안에서 “비트코인은 경제적인 가치를 디지털로 표상하여 전자적으로 이전, 저장 및 거래가 가능하도록 한, 이른바‘가상화폐’의 일종인 점, 피고인은 위 음란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사진과 영상을 이용하는 이용자 및 음란사이트에 광고를 원하는 광고주들로부터 비트코인을 대가로 지급받아 재산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취급한 점에 비추어 비트코인은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무형의 재산이라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8. 5. 30. 선고 2018도3619 판결)”고 하여 비트코인을 법죄수익은닉규제법상 몰수의 대상으로 인정하였다.

그런데 위 비트코인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이유로 가상화폐의 재물성이 인정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은 몰수의 대상을 형법상 ’재물‘의 개념으로 한정하지 않고, ’재산‘이라는 확장된 개념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의 경우 비트코인이 소유권의 객체인 물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도쿄지방재판소의 판결이 있는데, 가상화폐의 재물성을 판단하는데 도움이 된다. 비트코인 거래소(마운트콕스)를 이용하고 있던 원고가 소유권에 기한 비트코인의 인도를 구한 사안에서, 일본 법원은 소유권의 객체는 유체물이며 그 대상은 유체성과 배타적 지배가능성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비트코인은 ,“디지털 통화”, “암호학적 통화”로 여겨져 유체성이 없는 것이 분명하며, 비트코인 주소의 비밀키 관리자가 주소에서 잔량의 비트코인을 배타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인정할 수도 없다고 하여 원고의 비트코인 인도 청구를 기각하였다(東京地方裁判所 平成27年8月5日 平成26年(ワ)第33320? 判決).

가상화폐의 구체적 종류 및 성질에 따라 그 판단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현재의 수준에서 가상화폐는 디지털로 표상된 전자적 화폐의 기능을 보유한 가상화폐의 일종으로서 유체성과 배타적 지배가능성이 결여된 무형적 재산 정도로 이해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따라서 유체물 또는 물리적 관리가능성이 배제된 가상화폐의 경우 형법상 재물에 해당한다고 보아 횡령죄의 성립을 인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재산상 이익을 객체로 하는 형법상 범죄(배임죄, 사기죄, 공갈죄 등)가 성립할 수 있는 여지는 항상 존재하므로, 가상화폐를 보유하는 기업의 경우 그 보관과 관리에 있어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 법무법인 민후 이연구 변호사 작성, 이데일리(2019. 10. 26.)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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