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J, 최초 ‘잊혀질 권리’ 판결...5대 쟁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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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J, 최초 ‘잊혀질 권리’ 판결...5대 쟁점은?


올해 5월 13일 유럽사법재판소(ECJ)에서 최초로 잊혀질 권리를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판결이 선고됐다. 그동안 유럽의 각국에서는 잊혀질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유럽사법재판소에서 관련 판결이 나온 것은 최초이기에 전 세계 언론이 이를 주목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마리오 코스테하 곤잘레스라는 스페인 사람이 과거 자신의 집이 경매에 넘어갔던 적이 있지만 수년전에 이미 빚을 갚고 집을 찾아왔는데도, 집이 경매에 넘어간 사실을 보도한 언론기사가 지금까지도 구글에서 검색됨으로 인하여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해당 언론기사를 작성한 언론사를 상대로는 기사 자체의 삭제를, 구글 스페인과 구글 본사를 상대로는 검색결과에 나타나는 링크의 삭제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유럽사법재판소는 언론사에 대한 잊혀질 권리 행사는 받아들일 수 없고 구글에 대한 잊혀질 권리 행사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 바로 이번 판결이다.

유럽사법재판소 판결의 쟁점은 크게 5가지였다. 첫째, 구글을 개인정보처리자로 볼 수 있는가? 둘째, 미국 기업인 구글에게 유럽연합의 지침을 적용할 수 있는가? 셋째, 검색엔진 운영자에게 링크삭제 의무가 있는가? 넷째, 정보 자체의 게재를 막을 수 있는가? 다섯째, 언제나 링크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가?

검색엔진 활동도 ‘개인정보의 처리’에 해당, 검색엔진 운영자는 ‘개인정보처리자’

유럽사법재판소는 ‘제3자가 인터넷상에 공표하고 게재한 정보를 찾아내고 이를 자동으로 색인화하며, 일시적으로 저장하고, 종국적으로 인터넷 이용자들이 선호도에 따라 이를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검색엔진의 활동’은, 그 정보에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을 경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95/46 지침(directive) 제2조 제(b)호의 ‘개인정보의 처리’로 분류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리고 해당 검색엔진의 운영자는 그러한 처리의 측면에서 위 지침 제2조 제(d)호의 (개인정보) ‘처리자’로 취급되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선언했다.

따라서 구글과 같은 전형적인 검색엔진 운영자는 설령 그 검색엔진의 활동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기계적인 동작이고 그 과정에서 우연적·결과적으로 개인정보의 처리가 이루어지는 경우라 하더라도 개인정보처리자의 지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EU 회원국 영토 내에서 일정한 활동 하고 있다면 EU법 적용 가능

또한 유럽사법재판소는 검색엔진의 운영자가 EU 회원국의 영토 내에 회원국의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영업활동을 하기 위해 지사나 자회사를 설립한 경우라면, 그 검색엔진 운영자의 개인정보 처리는 EU 회원국 내 영토에서 개인정보처리자의 시설의 활동으로서 수행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즉 검색엔진 운영자의 본사가 EU 영토 밖에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지사나 자회사 등을 EU 영토 내에 설립하고 활동을 하고 있다면 이는 EU 영토 내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정보의 처리이므로 EU의 법령을 적용하는 데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구글과 같은 미국의 인터넷 기업에게도 EU가 일정한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의미로서, 구글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등 미국의 다른 인터넷 기업들이 이번 판결을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검색엔진 운영자, 정보주체 요구에 따라 링크삭제 의무 있어

이러한 기초적인 판단에 이어 유럽사법재판소는 “검색엔진의 운영자는 제3자에 의해 게재되고 특정 개인과 관련된 정보를 포함한 웹페이지의 링크들”을, “그 개인의 이름에 기초하여 행해진 검색으로 표시된 결과목록에서 삭제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그리고 이러한 삭제의무의 적용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특히 “현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그러한 삭제요구가 정당한지 여부를 심사해야 하고 그 외에 그러한 검색결과 목록이 그 정보주체에 대해 편견을 불러일으키는지 여부까지 살필 필요는 없다고 판시했다.

나아가 그러한 삭제요구에 대한 근거조문으로 여러 가지를 들었는데, 그 중 특히 중요한 것은 위 95/46 지침 제12조의 ‘접근권’과 95/46 지침 제14조의 ‘정보주체의 이의권’이다. 우리나라의 ‘정정청구권’ 등과 비슷한 것이다.

이 두 개의 조문은 EU의 회원국들에게 정보주체가 개인정보처리자로부터 몇몇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하라고 의무를 지우고 있는데, 바로 여기서 나오는 정보주체의 권리들이, 전자인 제12조 (b)항의 경우에는 ‘정보주체가 개인정보처리자에 대해 불완전하거나 부정확한 정보의 적절한 수정·삭제·차단을 요구할 권리’이고, 후자인 제14조 (a)항의 경우에는 ‘정보주체의 특수한 사정과 관련된 불가피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정보주체가 자신과 관련된 정보의 처리를 거부할 권리’이다. 유럽사법재판소는 바로 이러한 권리들로부터 잊혀질 권리의 법적 근거를 찾아낸 것이다.

웹페이지의 정보 게재 자체를 막을 수 없어

다만 이러한 경우에도 그 웹페이지의 정보 게재 자체는 합법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정보 게재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 유럽사법재판소의 판단이었다. 곤잘레스가 자신의 기사 자체를 삭제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기사 자체의 삭제를 용인할 경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가 될 수 있고 명예훼손 등이 성립하지 않는 한 표현 자체를 막을 뚜렷한 법적 근거도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공적 영역 활동 기록, 공중의 압도적 이익에 반할 경우, 잊혀질 권리 주장 못해

유럽사법재판소는 마지막으로 잊혀질 권리의 한계 내지는 적용범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보주체의 이러한 잊혀질 권리는 원칙적으로는 검색엔진 운영자의 경제적 이익은 물론이고 그 정보에 접근하고자 하는 일반공중의 이익에도 우선하는 것이지만, ①공적인 영역에서 그 정보주체가 수행한 역할에 대한 정보인 경우 ②그 검색결과 목록을 통해 당해 정보에 접근하는 일반 공중의 이익이 정보주체의 이익보다 압도적인 경우 등의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이런 경우에는 잊혀질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공익과 사익의 이익형량, 공적 영역 기록과 사적 영역 기록의 구별 등을 통해 잊혀질 권리의 적용범위 내지는 한계를 설정하여야 한다는 판시다.

판결에 대한 찬반 양론 팽팽해

이번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해서는 역사적이고 획기적인 판결이라는 반응도 존재하지만 인터넷을 이해하지 못한 심각하게 잘못된 판결이라는 반응도 존재한다. 특히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들이 즐비한 미국 쪽에서는 연일 신랄한 비판들이 쏟아지고 있으며, 유럽이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판결이라는 정치적인 해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잊혀질 권리는, 기업도 국가도 아닌 바로 오프라인 세계의 망각의 축복을 온라인 세계에서도 실현해 달라는 일반 이용자들의 애타는 요구가 끝없는 릴레이 소송으로 표출됨으로 인해 점점 가시화된 권리라는 점에서 인간의 본성과도 맞닿아 있다. 이에 잊혀질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명제 자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잊혀질 권리의 인정이, 오프라인 세계와는 다른 온라인 세계만의 또 다른 축복 즉 영원한 기록과 영원한 역사에 대한 인간의 열망을 해칠 때에는, 두 가지 인간본성의 충돌이 일어나고 역반발이 심화될 수 있기에 어떤 지점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주요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법무법인 민후 최주선 변호사 작성, 보안뉴스(2014. 5. 22.)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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